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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정보|생활

발목 박리성 골연골염 / 이단성 골연골염 / 관절내시경 / 치료 후기 / 수술 후 1년

 
2년 전 쯤 아침에 눈을 뜨면 발바닥 통증이 심해 바로 걷기가 힘들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너무도 명확하게 족저근막염의 증상이었기때문에 동네 작은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 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고 발바닥 족저근막염인것 같으니 일단 약을 처방 받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발바닥과 동시에 발목도 같이 아파옴을 느꼈고 불안한 마음에 관절을 전문으로 하는 더 큰 병원을 찾아갔다. 
 
똑같이 엑스레이 촬영 후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상이 없는것 같다고 말씀하시던 도중 갑자기 발목 관절 부위를 엄청 크게 확대해 보시더니 MRI 검사를 권하셨다. 그렇게 발견하게 된 발목 박리성 골연골염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던 중 우리나라에서 서인국씨가 박리성 골연골염으로 군대 면제를 받았다는 소식을 보았다. 생각보다 심각한 정도의 부상이라는 게 짐작이 갔고 수술밖에는 답이 없었다.
(주로 운동선수 혹은 활동량이 많은 20대 남성들에게 발병이 많이 된다고 한다.. 나는 왜..?)
 
- 박리성 골연골염(osteochondritis dissecans) 이란?

관절내의 연골하조직에 괴사가 일어나, 건강부에서 분리해서 관절내로 유리하는 것으로 20세 전후에 많으며 팔꿈치, 무릎관절이 다발부위이다. 서서히 운동제한, 통증이 나타나며, 관절을 사용하면 증상이 증가하고, 안정하면 경감된다. 관절 유리체가 관절면 사이에 들어가면 돌발적으로 통증이 일어나고, 관절을 구부리지 못하게 된다. 관절 유리체가 연골성인 경우에는 X-선상 불확실하여 관절 조영이 필요하다. 치료는 관절을 절개해서 유리체를 적출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단성골연골염 [離斷性骨軟骨炎, osteochondritis dissecans] (간호학대사전, 1996. 3. 1., 대한간호학회)

 
 
심각한 상황에서는 연골과 함께 뼛조각이 떨어져 나와 관절 사이를 돌아다니게 된다면 주변 연골들을 더 손상시켜 위험하다. 주로 추천되는 수술은 미세천공술이다. 
 
쉽게 말해 손상된 연골에 작은 구멍으로 상처를 내어 골수세포를 나오게 해 연골을 재생시키는 수술이다. 하지만 연골 특성상 100% 재생은 어렵고 정말 잘해야 7-90% 복구가 된다고 들었다. 재활도 오랫동안 꾸준히 해야하고 심지어 회복하는 동안에 못걷는 기간도 한달 혹은 그 이상이었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업무 특성상 걷지 못하면 무조건 병가를 내야하는 상황이었기에 선뜻 수술을 결정하지 못하고 1년 정도 미뤄두었다.
 
그 동안에 체외충격파로 족저근막염을 간간히 치료하면서 관절에 좋다는 영양제를 챙겨 먹고 되도록 쉬는 날에는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발목 통증은 못걸을 정도는 아니었고 가끔씩 '삑' 소리가 나는 정도 였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연골 손상으로 인해 뼈끼리 부딪힐때 나는 소리라고 하셨다.)
 
1년 후 다시 MRI를 찍었을 때 다행히(?) 손상된 연골사이로 뼈가 자라 있었다. 
 
미세천공술이 아닌 관절내시경으로 단순히 자라난 뼈를 깎고 연골부분을 다듬는 수술을 하게 되었다. 
 
물론 실제로 수술 시에 상태가 좋지 않으면 추후에 미세천공술을 해야할 수도 있다고 하셨지만 다행히 연골의 상태가 좋았고 한 번의 수술로 현재 나의 발목은 많이 호전된 상태이다. 
 
천공술과 달리 걷는 것도 수술 1주일 후부터 조금씩 걸을 수 있었다. 수술 후 3개월, 6개월, 1년 시기에 맞춰 꾸준히 검사사를 했고 이제는 '삑' 소리와 통증도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물론 나는 현실 상황때문에 바로 수술을 못했던 게 행운이었고 뼛조각이 떨어지지 않은 운이 좋은 케이스로 큰 무리 없이 치료하고 회복하게 된 것 같다. 
 
일반적으로 발목 박리성 골연골염이 생긴 환자들과 다른 방향으로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이 후기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이런 케이스도 있기 때문에 한 번 간 병원에서 바로 천공술로 결정하지 말고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적절한 시술 혹은 치료법을 제시해주는 의사선생님을 만나서 빠르게 완치 하셨으면 좋겠다.
(처음 병을 발견하지 못했던 동네 정형외과까지 포함하면 4군데 정형외과를 다녔다. 3곳 모두 관절 전문 병원으로 2차 병원이었다.)